[특파원 시선] 한글로 혐오글 쓰면 우리만 알 것이란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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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게시판 혐오글에 인도네시아 네티즌 분노…'인종 차별' 논란도 초래
▲ SM타운 라이브 2023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SM타운 라이브 2023 자카르타 위드 KB뱅크' 콘서트를 찾은 한 인도네시아 팬이 NCT 멤버들이 새겨진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자카르타=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 최근 인도네시아에서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가 큰 논란이 됐다.
2017년께 처음 연 이 사이트는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인들이 주로 활동하는 곳으로 인도네시아어 강의를 비롯해 인도네시아 여행지나 상식 등과 같은 자료들이 올라와 있다.
누구나 익명으로 글을 올릴 수 있는 자유게시판에서는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도 하고, 인도네시아 생활 정보를 교환하거나 타향살이의 고단함을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익명의 인터넷 공간이다 보니 거친 표현의 글들도 자주 올라온다.
특히 인도네시아인들과 이슬람 문화를 혐오하는 내용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등의 내용들도 많았다. 기사에 담기 힘든 극단적인 모욕 글들도 상당수였다.
일부 교민은 이 사이트를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 빗대 '인도네시아판 일베'라고 칭하며 인도네시아인들이 알까 걱정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최근 문제가 터졌다. 일부 인도네시아인이 이 사이트 존재를 알고는 게시판 등에 올라온 각종 혐오 글을 캡처해 인도네시아어로 해석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이는 순식간에 퍼졌고, 현지 언론에도 여러 차례 보도되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인도네시아인들은 분노했고, 일부 사람들은 한국인을 모두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이 사이트 게시판에 인도네시아어로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을 해코지하겠다고 위협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인 사회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교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다행히 해당 사이트 관리자가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문제가 된 글들을 삭제하면서 어느 정도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인도네시아인들에게 한국인이 인종 차별적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했다.
CNN 인도네시아는 이번 사건을 전하며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인종 차별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실제로 외국인 혐오 글, 특히 동남아시아인들을 혐오하는 글은 이 사이트뿐 아니라 여러 인터넷 공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진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한국어로 다른 나라 사람을 욕하면 우리만 알 것이라는 생각도 있는 듯하다.
실제로 많은 한국인이 해외에 나가 한국말로 현지인들을 흉보거나 욕하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있다. 당사자들이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 더 거친 언사와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인공지능(AI) 기술 발달로 언어의 장벽도 낮아지면서 이런 생각은 착각이 되고 있다.
이제 한국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각종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을 통해 한국인의 생각을 알 수 있다.
한류 열풍이나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는 뉴스를 보며 일명 '국뽕'에 취할 때가 있지만, 이런 관심이 한국에 대한 실망과 반한(反韓) 감정이라는 역풍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 한글 배우는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 학생
[한국찌아찌아문화교류협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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